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달려라 코바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후속 프로그램으로 날아라 호킹이 나왔지만, 달려라 코바만큼의 인기를 얻진 못했다. 참고로 날아라 호킹의 진행자는 [[진재영]]이었다. 호킹 전담 성우는 성우 [[한인숙]]이었다가 후기에 성우 [[김영선(성우)|김영선]]으로 교체되었다. 여담으로 이 프로그램도 게임화된 적이 있다. 추후 진행자는 [[이의정]]으로 교체되었다. 이후, [[퀴니]]를 비롯한 몇몇 케이블 방송사에서 비슷한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끝내 이 프로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.[* 그래도 2000년 9월 4일부터 2003년 중반까지 방송된 [[온게임넷]]의 '생방송 게임콜'은 꽤 선전했다. 이때는 전화 기술 연결 시스템이 달려라 코바 당시보다 발전됐기 때문에 핑 지연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.] 특히 주로 애니메이션을 방송하던 퀴니는 지나칠 정도로 유료 ARS 게임 프로에 집착하였던 것이 화근이 되어 몰락의 길을 걸었고, 얼마 뒤는 폐국하였다.[*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사에서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갈취해 가는(…) 유료 게임을 방영한다는 점부터가 큰 문제였다.] 이 달려라 코바를 소재로 한 [[최불암 시리즈]]도 있다. ||어느날 최불암이 달려라 코바에 걸렸다. 그래서 게임을 하는데 최불암은 우주선 게임이 걸렸는데 시작한 지 10초만에 죽은 것이었다. 이것은 달려라 코바가 생긴 이래로 최초였다. 김예분: "아니, 왜 이렇게 못하세요?" 최불암: [[네가 한번 만들어 봐라|"야, 너도 돌려봐!"]] 이유인 즉, 최불암은 버튼을 누르는 전화기가 아닌 [[다이얼]]을 돌리는 기계식 전화기를 사용했던 것이었다.||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, 이 게임은 [[번들 CD 경쟁 시대|첫 게임 잡지 번들]]이기도 하다. 1995년 '게임채널'이라는 월간 게임지를 사면 이 CD를 사은품으로 증정했다.[* 하지만 1996년에 레이싱 게임 정품 시디를 부록으로 증정한 컴퓨터 월간지인 하우 PC가 첫 번들을 제공한 잡지라고 알려진 탓에 이 사실은 철저하게 묻어졌다….] 사실 게임채널이 동서게임채널에서 내던 잡지인 지라 제작사가 자사 게임을 사은품으로 준 것이라 다른 번들과는 거리가 있다. 더불어 잡지를 사면 무작정 주는 게 아니라 잡지를 사서 그 달 20일까지 등록자 엽서를 보내야 집으로 보내주는 번들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